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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시엠림(크메르 문화 유적도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앙코르 유적이 있는 도시)에 위치한 최대 종교 기념물인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 왕 통치 기간에 건립되었습니다.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 제국 건축의 탁월함, 종교적 헌신,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지어졌으며 이 신전이 캄보디아 역사 속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캄보디아 역사 속 앙코르 와트

    힌두교는 크메르 제국의 중요 종교였으며 앙코르 와트 건설은 왕족의 신앙심과 헌신의 장엄한 표현으로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으로 지어졌습니다. 서기 1113년부터 1150년까지 크메르 제국을 통치했던 수르야바르만 2세 왕의 통치기간 내 종교 사원의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나중에는 불교 사원 단지로 변모하기도 하였습니다. 수르야바르만 2 세 왕 제국의 국가 사원이자 수도로 사용되도록 의도되었는데 힌두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고향인 메루산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광활한 우주를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종교적 상징주의와 정치적 정당성, 문화적 정체성을 위해 지어진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의 우주론과 신화를 반영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사원과 기념물을 포함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노력해 신전은 왕권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앙코르 와트 건축

    앙코르와트의 건설은 30여 년간의 긴 건축기간을 자랑하며 막대한 자원, 숙련된 노동력이 들어갔습니다. 앙코르와트 건설에 사용된 사암 블록은 주로 앙코르의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프놈 쿨렌에서 채석되었습니다. 그 다음 돌은 운하와 인공 수로를 따라 사원부지로 운반되었고 돌은 육지로 운반하기 위해 거대한 코끼리와 수레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약 49만 평의 면적을 차지하는 광대한 규모로 건설되었고 메루 산을 상징하는 중앙 탑은 지상에서 약 65미터 높이까지 솟아 있습니다. 앙코르 와트의 건축물은 복잡한 조각, 얕은 부조, 장식 요소가 많으며 숙련된 장인들이 힌두 신화, 역사적 사건, 일상생활의 장면을 담아 사암 블록에 꼼꼼하게 조각했습니다. 사원의 벽과 갤러리는 신, 천상의 존재, 전투, 종교의식을 묘사하는 수천 개의 개별 조각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원 단지 내 물의 흐름과 배수를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수력공학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사원의 홍수를 통제, 농경지에 원활한 농수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저수지와 운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크메르 사람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현재 유네스코로 등제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크메르 제국

    크메르 제국은 서기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남아시아에서 번성했던 강력한 문명이었습니다. 현재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는 현재의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일부 지역을 포괄했습니다. 크메르 제국의 초기 기원은 서기 6세기부터 9세기까지 이 지역에 존재했던 첸라 왕국에서 탄생했습니다. 크메르 제국의 시작은 자야바르만 7세가 창시자로 자바(현재 인도네시아의 일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서기 802년에 현재 캄보디아 롤루오스 근처의 하리하랄라야에 수도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세워진 크메르 제국은 자야바르만 7세(재위기간 1181 ~1218) 왕의 통치 기간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야바르만 통치하에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대규모 기반 시설 프로젝트로 현재 유네스코에 등제된 앙코르 와트와 바이욘 사원단지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원과 유산을 건설하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은 인도 문화, 특히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제국 역사의 대부분 동안 힌두교가 지배적인 종교였으나 자야바르만 7세 치하에서는 불교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종교적 헌신과 정치적 권력의 표현으로 앙코르와트를 비롯 웅장한 사원을 건설해 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크메르 제국 13세기에 내부 분쟁, 외부 침략, 가뭄등의 환경문제까지 더해져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은 이러한 문제로 점차 분열되었고 15세기에는 영토와 권력의 대부분을 이웃 왕국인 태국과 베트남 국가에 빼앗기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에 지속적인 유산을 남겨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과 같은 역사적 건축학적 걸작들을 물려주었습니다. 바라이로 알려진 저수지와 운하의 광대함은 크메르 제국의 농업경제를 지탱하게 하는 놀라운 기술 공학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크메르어, 문자, 문화적 전통은 캄보디아 주변 지역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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