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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궁궐 중에는 중요 문화유산 중 하나로 총 5곳의 궁궐이 존재합니다. 그중 두 곳이 창덕궁과 창경궁으로서 이는 처음 창덕궁으로 시작되어 나누어 만들어지게 되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두 궁궐이 인접해 있는 것은 본디 하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존재하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

    창덕궁과 창경궁은 모두 조선시대에 비슷한 이유와 목적으로 나누어 건립됩니다. 창덕궁은 주로 조선 왕과 왕족의 주거지로 사용되는 보조 궁궐로 건립되고 창경궁은 왕비와 후궁, 왕세자를 포함 이들을 모시기 위한 인력들까지 수용하기 위한 보조궁으로 지어졌습니다. 사실상 창덕궁으로는 수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확장 공사를 했다면 보다 간단히 이해되실 겁니다.

    창덕궁의 입지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했으며 울창한 숲과 산, 하천 등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선정되었고 수도에서 벗어나 왕실 가족을 위한 고요한 휴식처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조선 왕들의 주요 거주지 이자 행정 중심지였던 경복궁과 달리 좀 더 편안하고 비공식적인 분위기를 위함이었으며 왕들이 궁중 생활의 엄격한 형식에서 벗어나 정원을 가꾸거나 그림, 시등을 쓰는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창덕궁의 건축은 조선 제3대 태종 때 시작되었는데 이때가 1305년이었고 수세월동 안 확장 및 개조공사를 거쳐야 했습니다. 당시 번영하는 왕실은 더 많은 추가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창덕궁 옆에 창경궁을 건립하기 시작합니다. 세명의 왕비를 포함 이를 모시는 궁녀등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창경궁은 왕비 한 명당 무려 200명의 하인들이 붙었다고 하니 왜 추가 건립이 필요했을지 아실 겁니다. 그리하여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가까이 위치해 왕실 거주와 휴식의 공간으로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수세기에 걸쳐 확장과 변형 그리고 훼손과 복원을 거쳐 오고 있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멈춰 있으나 복원의 과제는 현재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훼손

    창덕궁과 창경궁은 한국의 많은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통해 다양한 피해와 파괴를 격었습니다. 먼저 두 궁의 훼손이 있게 된 사건들을 크게 나열해 보자면 임진왜란, 일제식민지 지배, 한국전쟁 일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과 창경궁 모두 아주 큰 피해를 입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군은 궁궐, 사찰에 있는 예술품 가리지 않고 약탈하고 파괴합니다. 이 기간 동안 두 건축물 또한 손상되고 주변 풍경 또한 파괴됩니다. 방치와 쇠퇴를 겪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왕실의 선호도 변화와 재정적 제약 및 기타 요인으로 인해 궁궐의 유지 관리에 소흘함이 생기게 되고 궁궐 내 건물 및 정원등 기타 구조물이 노후화를 격기도 합니다. 그리고 20세기초 1910~1945년 일제식민지로서 지배받던 시절 동안 상당한 개조와 훼손으로 두 궁은 몸살을 앓게 됩니다. 일본정부는 궁궐의 재배치는 물론 개조 또한 서슴지 않고 진행해 버립니다. 그로 인한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대대적인 개조공사와 변형으로 인해 두 궁의 복원의 길은 아직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년 이후 또다시 전쟁의 그늘이 드리워지며 1950 ~ 1953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비롯해 광범위한 파괴와 피해가 우리에게 남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궁궐은 폭격과 포격 약탈로 얼룩지며 궁궐을 포함 많은 문화재 또한 훼손, 멸실되어 버립니다. 한국전쟁 종식 이후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과 복원 등으로 다시 재 복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재건

    창덕궁과 창경궁의 복원사업은 유적지를 본래의 모습으로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지속적인 사업의 노력입니다. 한국전쟁의 폐허 이후 두 궁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하는데 손상된 구조물을 재건하고 궁전 부지와 정원을 일부 복원합니다. 문화재 복원에 힘쓰기를 주력하며 시민들과의 교류를 원했던 정부는 창경궁의 일부를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리는 결정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금 창경궁 안에 존재하던 동물들은 현재의 서울대공원으로 이동시키고 제대로 된 복원에 힘쓰기 시작합니다. 창덕궁은 후원과 함께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이 지정으로 궁궐의 문화적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됨으로써 정부는 추가적인 복원 사업에 노력하게 됩니다. 역사적 재건축과 복원 중에도 역사적 고증의 오류가 종종 발생하여 잘못 복원되거나 자재의 소실로 제대로 된 복원에 차질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유산에 대한 본래의 모습과 문화적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세심한 연구 및 다양한 문화 행사, 전시, 교육프로그램까지 더해 한국 궁궐에 대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 대해 알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건립과 훼손 그리고 재건은 많은 시간과 함께 하난의 스토리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이 역사적 유산을 우리 이후의 세대가 잘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보존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강합니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완벽해지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되는 그날까지 복원사업 쉬지 않고 달려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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