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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해전하면 다들 떠올리는 3대 해전은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일 것입니다. 다들 이 3대 해전에 대한 내용이나 전략 전술에 대한 내용을 영화나 이야기 및 자료로 많이들 접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그 이외의 해전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을 많이 보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룰 내용은 임진왜란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3대 해전 이외 23전 23승이라는 타이틀과 실제 해상 전투는 몇 번이나 있었는지 날짜순으로 나열하고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이순신은 1591년 전라도 수군절도사가 되자 일본이 침략을 대비하여 전선(판오선)과 거북선을 제조하고 침략한 일본군에 대항합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해전순서를 나열해 보자면 옥포해전 - 합포해전 - 적진포 해전 - 사천해전 - 당포해전 - 당항포 해전 - 율포해전 - 한산도 대첩 - 안골포해전 - 장림포해전 - 화준구미해전 - 다대포해전 - 서평포해전 - 절영도해전 - 초량목해전 - 부산포해전 - 웅포해전 - 제2차 당항포해전 - 장문포해전 - 친천량해전 - 어란포해전 - 벽파진해전 - 명량해전 - 절이도해전 - 노량해전입니다. 실제로는 23전 23승이 아닌 25전 24승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26번의 순서별 해전

    1. 옥포 해전 (1592년 6월 13일) 장소 거제시 옥포, 승전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이영남 장수를 필두로 판옥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이 이용되었습니다. 이 전투로 우리 군의 피해는 1명만이 부상 입었을 뿐 단 한 척의 배도 침몰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전투로 일본군의 군함은 26척이 격침되고 4천 명이 넘게 전사하게 됩니다. 이 수치를 보면 우리 군 측의 전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23전 23승의 대전승의 첫출발이었습니다.

    2. 합포 해전 (1592년 6월 16일) 장소 창원시 진해구, 승전 - 옥포해전과 동일하게 합포해전 역시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이영남 장수를 필두로 진두지휘 되었으며 병력 또한 판옥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이 투입되었습니다. 이 전투로 조선군의 피해는 없었으며, 반면 일본군의 피해는 5척의 군함이 침몰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3. 적진포 해전(1592년 7월 9일) 장소 통영, 승전 - 옥포해전과 합포해전, 적진포해전이 모두 동일하게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이영남 장수를 필두로 해상전투를 치러냈습니다. 병력 또한 비슷하게 투입되었으며 적진포해전의 우리 조선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군의 피해와는 달리 일본군의 피해는 2,800여 명이 사망하고 11척의 군함이 격침되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4. 사천 해전(1592년 7월 9일) 장소 사천, 승전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이영남, 송희림, 김완 장수를 필두로 26척의 판옥선과 이때 최초로 거북선 2척이 투입되게 됩니다. 이 전투로 이순신을 포함해 3명의 부상자가 나오게 됩니다. 반면 일본군은 2천 명이 넘는 군사들 포함 전멸이라는 결과를 남기게 됩니다.

    5. 당포해전(1592년 7월 10일) 장소 통영, 승전 - 이순신, 원균, 권준을 진두지휘아래 51척의 판옥선으로 일본군함 21척을 모두 전멸시킵니다.

    6. 당항포 해전(1592년 7월 10일) 장소 경상도 고성 당항포, 승전 - 이순신, 원균, 권준의 진두지휘아래 51척의 판옥선으로 일본군함 26척을 격침 전멸시켰습니다. 이제 겨우 5번의 해전을 정리하면서도 감동이 밀려오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거기에 하루동안 같은 병력으로 두 번의 전투를 각각 다른 장소에서 치렀다는 사실이 얼마나 체력적으로 치쳤을지 조선군의 흘린 피땀이 나의 가슴을 적셔오고 뭉클함으로 나오는 나의 가슴의 눈물로 그들이 흘린 피땀을 이제라도 닦아주는 느낌입니다.

    7. 율포 해전(1592년 6월 7일) 장소 거제, 승전 - 이순신, 원균, 권준의 장수를 필두로 51척의 판옥선을 동원하여 대략 7척의 일본군함을 격침 전멸 시켰습니다. 부산으로 이동하는 일본 군함을 이순신이 이끄는 삼도수사 함대가 발견하고 전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8. 한산도 대첩(1592년 8월 14일) 장소 통영, 승전 임진왜란의 3대 해상전투 중 첫 번째의 전투가 한산도대첩이다 학익진의 전술로도 잘 알려진 이 전투는 이순신, 원균, 이억기,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이영남, 김완, 송희립, 황세득의 장수가 활약하였으며 총 56척의 판옥선으로 조선군의 피해는 안골포해전을 포함해 13명의 사상자를 낳게 됩니다. 반면 일본군의 피해는 대략 50여 척의 군함이 침몰되거나 나포됩니다.

    9. 안골포 해전(1592년 8월 16일) 장소 경상도 진해 안골포, 승전 - 이순신, 원균, 이억기, 권준, 배흥립, 정운, 이영남, 김완, 송희립, 황세득의 장수가 활약하였으며 한산대첩과 동일하게 대략 56척의 판옥선으로 42척의 일본군함을 격침시켜 전멸시키게 됩니다.

    10. 장림포 해전(1592년 10월 4일) 장소 부산, 승전 - 이순신, 이억기, 원균이 74척의 판옥선을 비롯해 92척의 협선(판옥선 이후 만들어진 부속선)으로 전투가 이루어졌으며, 6척의 일본 군참을 격침 전멸시키며 승전하게 됩니다.

    11. 화전구미 해전(1592년 10월 4일) 장소 부산, 승전 - 이순신, 이억기, 원균, 정운이 166척의 판옥선과 협선을 동원하여 전투가 이루어졌고, 5척의 일본군함을 격침 전멸 시켰습니다. 10월 5일 이 하루동안은 총 6번의 일본군과의 충돌이 부산 앞바다에서 이루어졌는데 각각 다른 이름의 해전으로 나누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12. 다대포 해전(1592년 10월 5일) 장소 부산시 사하구, 승전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이 화준구미 해전과 동일하게 166척의 판옥선과 협선을 동원하였습니다. 8척의 일본 군함을 격침 전멸시키게 됩니다.

    13. 서평포 해전(1592년 10월 5일) 장소 부산 사하구, 승전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이 166척의 판옥선과 협선을 동원 승리하며 일본군의 9척의 군함을 전멸시켜 버립니다.

    14. 절영도 해전(1592년 10월 5일) 장소 부산 영동구, 승전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이 74척의 판옥선과 92척의 협선 즉 166척의 군함으로 피해 없이 승리하고 2척의 일본 군함을 전멸시켜 버립니다.

    15. 초량목 해전(1592년 10월 5일) 장소 부산 동구, 승전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은 166척의 군함으로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승리를 하고 4척의 일본 군함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16. 부산포 해전(1592년 10월 5일) 장소 부산 사하구, 승전 - 10. 5일 아군의 피해 없이 계속 승전을 해왔지만 부산포 해전은 안타깝게도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470척의 일본군함과 격돌하게 되며 발생한 아군의 피해였던 것입니다. 166척의 군함으로 격돌한 이번해전은 100척의 일본군함을 격침시키며 그들을 몰아냅니다. 이때 일본군의 수는 무려 7만 명이 넘게 동원되었던 해전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17. 웅포 해전(1593년 3월 3일) 장소 창원시 진해구, 승전 - 이순신, 이억기, 원균은 총 89척의 판옥선으로 40여 척의 일본군함과 격돌하게 됩니다.

    18. 제2차 당항포 해전(1594년 4월 23일) 장소 경남 당항포리, 승전 - 이순신, 이억기, 원균이 함께 하였으며 124척의 판옥선으로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31척의 일본군함을 전멸시켜 버립니다.

    19. 장문포 해전(1594년 11월 15일) 장소 거제시 장목리, 승전- 50여 척의 판옥선으로 이순신, 윤두수, 곽재우, 김덕령이 출전합니다. 이 해상 전투로 우리 조선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일본군은 2척의 군함이 침몰되고 사실상 무승부로 남았다는 말도 있으나 피해의 정도로 보면 장문포 해전 역시 승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 칠천량 해전(1597년 8월 28일) 장소 칠천량해협, 패전 - 이 해전의 경우 원균, 이억기, 최호, 배설, 김완이 출전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 없이 출정하여 원균이 이끌었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한 패배를 하게 되며 122척의 판옥선이 침몰되고 출정한 장수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크나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출정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임금인 선조에게 견제를 받고 있었던 터에 원균의 모함까지 더해져 결국 이순신은 파직은 물론 고문까지 당하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원균이 이순신의 자리를 이어받아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라 칠천량 해전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과 전술과는 달리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전략등으로 결구 출정한 원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장수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결말을 맺게 됩니다. 훗날 원균은 오만하고 나태한 군 운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번 해전의 패배로 원균은 정유재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장본인으로 남게 됩니다.

    21. 어란포 해전(1597년 10월 7일) 장소 전라도 어란포, 승전 - 앞선 해전의 패배로 조선이 열세하게 되자 선조는 파직시킨 이순신을 다시 삼도군통제사로 복귀시킵니다. 복귀 이후 첫 출정을 한 이순신은 김억추와 함께 군을 이끌었으며 일본군이 전장을 이탈하며 우리 군이 승전하게 됩니다.

    22. 벽파진 해전(1597년 10월 6일) 장소 전남 벽파진, 승전 - 이순신, 김억추가 12척의 판옥선으로 해전을 펼쳤으며 사실상 일본군이 전장을 이탈하며 승전하게 됩니다.

    23. 명량 해전(1597년 10월 25일) 장소 전라도 진도 인근 명량해협, 승전 - 이순신을 포함해 배흥립, 김응함, 조계종, 배설, 안위, 김억추, 류형등 여러 장수들이 함께 하였으나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고군분투의 해전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일본 군함을 상대하였으며 수적으로 열세한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의 난해한 조류를 이용한 뛰어난 전술을 펼쳐 승전으로 이끌어 냅니다.

    24. 절이도 해전(1598년 8월 20일) 장소 전라도 고흥, 승전 - 이순신은 60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100척의 일본군함과 해상 전투를 벌여 50여 척의 일본군함을 격침시킵니다.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

    노량 해전(1598년 12월 16일) 장소 경상도 노량해협, 승전 - 이순신, 김완, 이영남, 송희립 등과 명나라 사신인 진린, 등자룡이 함께 하였습니다. 80여 척의 우리 판옥선과 60여 척의 명나라 군함을 이끌고 500척의 일본군함과 격돌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200여 척의 일본군함이 침몰되고 1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며 우리의 승전으로 향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포함 여러 장수들이 안타깝게 전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임진왜란은 총 7년간 해상은 물론 땅 위에서도 수많은 전투가 지속된 일본의 긴 침략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 내부의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임진왜란은 막을 내리게 되며, 1599년 한국은 일본과 협상을 하고 국경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게 됩니다.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문화적 손실과 혼란, 경제적 황폐화의 결과를 남겼지만 이순신 장군이라는 시대적 영웅을 우리는 만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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