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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출신 원라라의 황후
이번엔 중국 원나라의 큰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중 하나인 기왕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왕후는 1315년겨 행주(현재의 북한)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기승냥 이었습니다. 우리가 본 드라마속 기황후의 이름과도 같은데요 그녀의 놀랍고 다체로운 인생 이야기는 문학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등에서 수많은 각색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마만큼 좋은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수가 없을듯 합니다. 지금 부터 기황후의 발자취를 쭉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 속 기황후의 이야기
잘 알려져 있는 기왕후의 삶과 달리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참으로 알려진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꽤나 힘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을거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고려식 본명에대해서도 알려진바는 없고, 문헌에 따르면 "솔롱고 올제이 후투그"라는 몽골식 이름 남아 있습니다. 그럼 어떠한 연유로 고려에서 태어난 그녀가 원나라 황후가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황후가 살었던 시대에는 조공제도라는 외교제도가 있었습니다. 이제도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교 관계 유지와 무역 이익 확보를 위해 중국에 사절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조공제도란 중국의 주변 나라들이 중국에 정기적으로 예물을 바치며 중국의 침략을 막고 상호 공존 관게를 수립하는것을 말하는 겁니다. 이러한 조공 임무의 일환으로 파견 국가가 귀중한 물품을 물론 첩과 같은 인간 제물까지도 원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관례가 있었던 겁니다. 이 후궁들은 귀족 가문에서 선발되어 외교 교류의 표시로 황제에게 바쳐져 오게 되는데, 이때 기황후는 고려에서 원에 조공하는 임주중 하나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의 선택이었는지 강요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고려 사회 내에서 그녀 가족 역시 귀족 가문으로서 기황후또한 조공으로 원나라행을 하게 됩니다. 원나라의 수도인 다도(현재의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기황후는 원나라 혜종에게 소개되어 혜종의 주목을 받게되었고 결국 혜종의 3번째 황후에 올라 보현숙성황후라 시호를 받게 됩니다.
권력을 갖는 기황후
기황후가 황후가 되기 까지는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혜종의 총애를 받을 수록 제1황후인 타나실리의 질투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 질투의 수준을 뛰어넘어 견디기 어려운 고문까지 당하기 일수로 채찍으로 맞아야 한다거나 인두로 지짐을 당하기도 하며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 기황후는 그저 견뎌 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타나실리의 일가는 모반을 꾸민 혐으로 멸문하게 되고 타나실리 또한 폐위되어 유배를 가는 길에 독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기황후는 제1황후의 질투의 덧에서 벚어나게 되고 혜종은 그녀를 제1황후로 삼으려 애쓰지만 몽골족이 아닌 고려인 출신의 기황후를 반대한 세력으로 아유시리다를 출산후 그녀의 자리는 제2황후로 책봉되는 것에 그치게 됩니다. 이후 황태후인 부다시리가 축출되게 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기황후는 휘정원을 맡게되며 권력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다른 후궁들의 치열한 경쟁과 정치적 음모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재치를 발휘해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르고 기황후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를 황태자로 책봉하며 고려인 여인을 며느리로 친히 골라 황태자비로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권력과 부를 갖춘 기황후는 여전히 제2황후의 자리에 머물다 제1황후인 바얀후투그가 1365년 죽게되며 제1황후의 자리에 오르게됩니다. 기황후의 유능함은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좋은 전략을 펼치며 인정 받아 왔으며 일족의 번열을 목적으로 불교 관련 천축물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황후의 득세는 고려에게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면 기황후는 가족들을 위해 고려에 영향을 행사하였고 가족들은 권력을 장악하며 폐악을 부렸던 것입니다. 또한 원나라고 끌려온 공녀들을 자신의 권력 강화에 이용하느라 오히려 고려가 원나라로 보내는 공물의 양이 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기황후의 삶은 진실과 추측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녀의 공녀에서 황후가된 스토리는 오늘날 까지도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합니다. 기황후의 이야기는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강한 여성상중 하나의 아이콘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드라마속 기황후
이번에는 드라마 속의 기황후에 대해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륙을 품은 철의 여인이라는 타이틀로 제작된 이드라마는 퓨전사극으로서 다른점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드라마는 2013년 MBC를 통해 방영되엇으며 29%의 시청율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드라마 입니다. 기황후인 기승냥의 역에는 배우 하지원, 고려말의 왕 역에는 주진모가 그리고 심약한 원나라 황제는 지창욱이 맡으며 연기에서는 아직 햇병아리였던 지창욱은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기황후가 고려에서 원나라로 가게된 이후 홯후 자리에 오른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황후가 된 이후 고려인들을 위해 노력하며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나 이부분이 역사적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에 시청하는 이의 많은 놀란거리로 도마에 올랐던 것입니다. 앞전에 말한것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보자면 기황후가 원라라의 황후가 됨으로서 고려는 오히려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기황후 가족들의 고려에 대한 폐악질은 결국 고려 왕실과의 마찰로 이어지고 이러한 사유를 빌미로 원나라 군대가 고려를 공격하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이 공격에는 기황후의 관여도가 컷기 때문입니다. 또한 드라마속 검소한 기황후와는 달리 실제는 부와 권력을 쥔 그녀를 흥청 망청 하였으며 고려를 위한 기여도는 사실상 자료상으로 남아 있지 않는것으로 보아 기황후는 드라마와 사뭇 다르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이외 고려의 왕 왕유 역도 상당히 미화 되어 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고려말 음금중 가장 최악의 폭군으로 평가 받는 총혜왕인데 드라마 속에서는 그저 나라를 사랑하고 한여자만을 그리는 멋진 왕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왕유라는 등장인물은 그러 허구에 가깝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드라마 기황후는 퓨전 사극으로서 극적인 재미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걸 생각하고 즐긴다면 긴 대서사시의 기황후을 만나보실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