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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최초의 국가로 간주되는 고조선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조서에 관한 역사적 내용은 전설이나 신화와 뒤섞여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고조선은 한국의 첫 번째 국가임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고조선'이라는 이름은 '고대' 또는 '오래된'을 의미하는 것과 '조선'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후에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통치했던 조선 왕조를 포함한 여러 한국 왕조와 관련된 이름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최최고조선에 대한 언급은 기원전 2세기 사마천의 "대사적 기록" 중국 문자 그대로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고조선을 한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수도를 가진 국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조선과 고대 중국 사이의 관계에는 많은 스토리가 존재하며 한국과 중국의 역사 기록은 두 국가 사이의 상호작용, 동맹 그리고 갈등을 묘사하고 있는 만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 역사의 근본인 고조선의 건국 신화와 청동기 시대 그리고 붕괴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
단군 신화에 따르면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로 알아보는 단군신화는 아주 오래전 구름 위 높은 땅에 환인과 그의 아들 환웅이라는 현명한 신이 살았는데 환웅에게는 아래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환웅은 땅으로 내려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태백산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산인 그곳에 터를 잡습니다. 그런데 이산에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호랑이와 곰이 있었는데 이 두 동물은 사람들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빌고 환웅은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둘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기로 결심합니다. 호랑이와 곰에게 마늘과 쑥 한 다발을 주며 100일 동안 어두운 동굴에서 지낼 것을 제안합니다. 호랑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동굴에서 떠나지만 곰은 참고 인내하며 마늘과 쑥을 먹으며 꿋꿋이 버텨냅니다. 곰의 인내심은 결국 인간으로 변화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고 환웅은 그녀의 이름을 웅녀라고 지어주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정성을 다해 빌기 시작했고 환웅은 그녀의 정성스러운 기도를 듣고 웅녀와 결혼합니다. 곧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데 바로 그 아이가 단군왕검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단군은 자라면서 백성들을 위해 왕국을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단군은 고조선을 세우게 됩니다. 백성들은 그의 통치 아래 행복하게 살았으며 이것이 한국사의 시작인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것입니다.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만주를 포함하여 현재 중국 동북부의 일부까지 확장합니다. 수도는 왕검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리는 이름 또한 아사달, 평양성, 검독, 험독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표기하고 있으며 한반도 북부의 중요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고조선과 청동기 시대는 모두 한반도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청동기 시대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을 도구, 무기, 의식용 물건을 생산하는데 널리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대 기술의 도입은 문화적 교류와 무역을 수반하였고 중국을 포함한 인근 지역과의 고조선의 상호작용이 청동 기술과 문화적 관습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결합하여 만든 합금인데 청동 기술의 도입은 주로 돌과 뼈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었던 초기에 비해 큰 발전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청동 도구와 무기는 돌과 뼈로 만들어진 도구보다 더 내구성이 뛰어나고 효율적이며 농업, 공예, 무기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청동 무기의 도입은 청동검, 단검, 창끝과 같은 부분에 적극 활용 되었으며 고조선의 군사력의 강화에 기어하게 됩니다. 군사력의 강화는 권력의 역동성, 영토의 확장,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청동기 공예품들은 실용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표현의 역할을 상승시켜 고조선의 장인들은 사회의 문화적,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는 청동제물, 장식품 그리고 제수 용품들을 만들었고 청동 주조는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함으로 복잡한 청동 공예품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장인 정신을 예술적 경지에 오르게끔 해주었습니다.
붕괴
역사 학자들은 고조선이 붕괴된 원인을 내부적, 외부적 압력에 직면하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고대 국가들처럼 고조선은 내부 권력 투쟁과 다른 파벌들 사이의 갈등을 겪고 나라의 안정이 약화되었다는 설과 고조선이 외부 세력의 압력에 부딪혔다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주변 집단의 이주와 침입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다양한 부족 집단의 이동이 고조선 내부의 정치적 , 사회적 격변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며 북방의 강력한 중국 국가들의 부상은 고조선의 쇠퇴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중국의 역사 기록에는 고조선과 이들 국가 사이의 갈등과 상호작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중국의 성장이 고조선의 북방 국경을 압박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 가운데 고조선은 정치적 통합과 영토 보전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한국의 삼국 즉 고구려, 백제, 신라가 출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고조선 시대의 상세한 기록의 부재는 많은 부분을 추축 하게 하고 있으며 알려진 것의 많은 부분은 후기의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에 신화와 역사의 혼합은 또 다른 복잡성을 더해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요약하자면 고조선의 멸망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이 고대 왕국의 멸망에는 내부적 갈등과 외부적 압력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복잡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